《그대가 바로 우주의 중심이다》 조한수 저자 인터뷰
조한수 | 2020-04-17 | 조회 901
1. 시를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한순간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는 각박한 삶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아주 조금씩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처음 의도했던 삶의 방향과 전혀 다른 길로 가고 있다는 두려움이 엄습할 때는 잠시라도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는 것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일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어쩌면 자기 자신과 더 치열한 싸움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싸움은 자신을 되돌아보며 반성을 하는 시간이고,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일이며, 나를 찾는 작업이기도 하다. 시를 쓴다는 것은 고통을 수반하는 작업이지만 ‘시’라는 좌표를 통해 존재하는 이유를 확인하는 일이기에 또 행복한 일이기도 하다.
2. 《그대가 바로 우주의 중심이다》를 출간한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동봉(東峯) 선생은 「나의 삶(我生)」이라는 시에서 ‘꿈꾸는 늙은이’가 되고 싶다 했고, 췌세옹(贅世翁)이라는 호를 지어 늙은이로 살아가는 삶을 스스로 경계했다. ‘꿈꾸는 늙은이’라는 말은 중년을 지나 노년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아름다운 말이 아닐 수 없다. 우린 모두 삶이라는 긴 여정을 가는 도중(途中)에 삶이라는 퍼즐의 조각들을 하나씩 맞춰가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대가 바로 우주의 중심이다』라는 시집에 있는 시 한 편 한 편은 반성적인 삶에 대한 고찰의 결과물이고, 기쁨의 현장에서 노래한 가사이며, 불행의 뒤안길에서 나를 보듬어 안은 위로의 노래들이다. 시집을 출간하는 것은 ‘꿈꾸는 늙은이’가 되는 일이고, 쓸데없이 나이만 먹어가는 늙은이가 되지 않는 일이며, 퍼즐 조각을 맞춰가는 것이기에 고맙고도 감사한 일이다. 이 시집이 나오도록 수고해주신 ‘바른북스’ 관계자들께 진심으로 고맙고 또 감사하다.
3. 책을 집필하면서 겪은 에피소드, 또는 즐거웠거나 어려웠던 점을 이야기해 주세요.
글쓰기를 하면서 조사 하나, 연결어미 하나를 두고 고민을 할 때, 선택한 시어(詩語)가 문맥에 맞지 않을 때는 어렵고 힘들었지만, 맥락에 맞는 우리말을 찾아낼 때는 아이처럼 기쁘기도 했다. 글쓰기를 하면서 적재적소에 맞는 어휘를 찾아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실감했다. 타고난 재능이 없기에 지름길은 더욱 없는 것 같다.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 지름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 해준 계기가 되기도 했고,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근본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글쓰기의 과정이기도 했다. 하나, 둘 내려놓아야 할 나이에 시집을 출간한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하는 생각을 참으로 많이 했다. 동봉 선생의 ‘꿈꾸는 늙은이’에서 많은 위로를 받고, 용기를 냈다. 삶의 퍼즐을 맞추는 간절한 심정으로 출간에 임했기에 즐거웠다. 나의 등불인 동봉 선생님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4. 책 내용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애착이 가는 구절이 있나요?
산다는 것은 행복과 불행이 번갈아 오는 것인데도 우린 행복에만 집착하는 것이 아닐까? 행복의 이면에 존재하는 불행도 소중한 자기 자신의 삶이기에 버려서도, 외면해서도 더욱 안 될 것이다. 오히려 불행할 때 자신을 더 사랑하고 보듬어 안아 스스로 위로하는 것이 다가올 내일을 준비하는 중대한 그 무엇이 아닐까? 시「불립문자」에 나오는
웃음과 사랑이 인생의 향기이듯이 슬픔과 미움도 또 다른 삶의 자락이겠지
불립문자 中
라는 의미를 새삼 새겨본다.
5.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셨나요?
첫째는 잊는다. 잊고 산책을 하다 보면 엉킨 실타래가 풀어질 때가 있고 키워드가 생각나기도 한다. 실마리가 되는 단어와 키워드는 꼭 기록해두고, 또 잊는다. 둘째는 글쓰기의 주제와 상관이 없는 책을 읽기도 하고, 음악을 듣기도 하며, 그림을 보기도 한다. 글쓰기 주제와 전혀 상관이 없는 책이나, 음악, 그림 속에서 주제와 맥락이 닿는 어휘를 찾을 때도 있다.
6. 이 책을 접할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주세요.
동봉의 시, 브람스의 음악, 조속 선생의 그림을 읽고 듣고, 보면서 그분들을 스승으로 삼았고, 혼자 술을 마실 때는 벗으로 초대하여 그분들께 먼저 잔을 올리며 말 없는 말로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다. 이 또한 그분들과 맺은 참으로 선한 인연이 아니겠는가. 인연을 생각했다. 불교식 인연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너와 나’라는 말과 ‘우리’라는 말에는 이미 ‘인연’으로 맺어져 관계가 형성되었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들어있다. 너와 나, 음악과 나, 그림과 나, 자연과 나에 관한 이야기를 인연으로 풀어보았고, 관계의 소중함에 대해 풀어보았다. 비록 완성도 높은 작품은 아닐지라도 혹시 이 책에 실린 시를 읽고 독자들께서 타인과 맺어놓은 인연의 소중함에 대해, 사물과 맺어놓은 관계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면 좋겠다. 글로서 만나는 인연도 소중한 인연이다. 그 인연이 선한 인연으로 이어진다면 참으로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