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퍼서 연주하는 곡이 아니라, 슬픔이 지나간 다음에 연주하는 곡이야.”
- 상실 이후의 삶을 다섯 개의 목소리로 그리다.
『토요일 오후 두 시』는 척수 손상으로 하반신이 마비된 열여섯 살 소년과 그를 둘러싼 네 사람의 이야기다. 한국 청소년 문학에서 좀처럼 정면으로 다뤄지지 않았던 소재, 척수장애 청소년의 일상이 이 소설의 한가운데에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기적적인 회복을 약속하지도, 비극을 전시하지도 않는다. 대신 사고 ‘이후’의 시간을 산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지를 보여준다. 침대에서 휠체어로 몸을 옮기는 동작, 감각이 없는 피부를 매일 살펴야 하는 밤의 의식, 비 오는 날마다 몸통을 조여오는 통증, 영화관에 가기 위해 미리 계산해 두어야 하는 엘리베이터의 위치와 화장실 동선까지. 작가는 이 일상을 연민의 시선이 아니라 당사자의 시선으로, 놀랍도록 정확하게 그려낸다. 주인공 서준에게 그것은 극복해야 할 시련이기 이전에, 양치질처럼 매일 해내야 하는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은 다섯 화자가 교차하는 구성에 있다. 약한 모습을 보이느니 사랑하는 사람을 밀어내는 쪽을 택하는 서준, 그런 서준에게 “나한테 어떤 사람이 필요한지를 왜 네가 정해.”라고 되묻는 여자 친구 연우, 친구의 빈자리를 지키면서 그 마음이 우정인지 아닌지 스스로에게조차 떳떳하지 못한 세헌, 아이가 닫아건 문 앞에서 돕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사랑임을 배워가는 엄마 은수, 아들을 위한다는 마음이 어느새 재촉이 되어 있었음을 깨닫는 아빠 도현. 같은 사건이 다섯 사람의 눈을 통과할 때마다 독자는 조금 전 읽은 장면을 다시 보게 된다. 한 사람의 침묵이 다른 사람에게는 9개월의 기다림이었고, 한 사람의 배려가 다른 사람에게는 ‘보호받는 사람’이 된 것 같은 수치였다는 것을. 이 구성은 단순한 형식적 실험이 아니라 소설의 주제 그 자체다. 우리는 서로를 위한다는 이유로 얼마나 자주 상대의 자리를 혼자 정해버리는가. 사랑은 상대를 놓아주겠다는 일방적 결심이 아니라, 상대에게 묻고 상대의 답을 기다리는 일이라는 것을 이 소설은 다섯 번에 걸쳐, 다섯 개의 목소리로 말한다.
어른 화자들의 이야기가 청소년들의 이야기와 같은 무게로 놓여 있다는 점도 특별하다. 병원 재단을 이어받아야 하는 집안에서 ‘정해진 길’을 걸어온 아빠는, 사고 이후 아들에게 또 하나의 정해진 길을 마련해 주고 싶은 유혹과 싸운다. 시립 교향악단 단원이었던 엄마는 아이가 다리를 잃었는데 엄마가 무대에 선다는 죄책감 속에서 바이올린을 내려놓은 채 살아간다. 아이의 회복만이 아니라 부모의 회복까지, 한 가족 전체가 각자의 속도로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이 소설의 또 다른 축이다. “매일매일, 조금씩 더 편해질 거야.”라는 말이 위로인지 자기 주문인지 알 수 없는 채로 하루를 버텨본 적 있는 어른 독자라면, 은수와 도현의 장에서 오래 머물게 될 것이다.
문장은 시종 절제되어 있다. 작가는 인물의 감정을 설명하는 대신 사물과 행동에 감정을 싣는다. 사고의 순간 보도블록 위로 흩어지던 생일 케이크, 계절이 바뀌는 동안 노랗게 물든 단지 입구의 은행나무, 책상 서랍 맨 아래 칸에서 1년 넘게 기다린 생일 선물, 겨울 외출 때마다 서준의 무릎에 덮이는 담요. 이 사물들이 인물들의 말하지 못한 마음을 대신 말한다. 감정이 넘치기 쉬운 소재를 다루면서도 문장이 먼저 울지 않기에, 독자의 마음이 먼저 움직인다.
제목의 ‘토요일 오후 두 시’는 소설 속에서 여러 번 변주된다. 사고 이후 두 사람이 처음 다시 마주 앉은 약속 시간이었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잠시 비워두어야 했던 시간이었으며, 마침내 매주 다시 채우기로 약속하는 시간이 된다. 사고는 되돌릴 수 없지만 토요일 오후 두 시는 매주 돌아온다. 이 소설이 상실을 다루는 방식이 바로 그렇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이야기가 아니라, 잃어버린 자리에서 다시 시작되는 시간의 이야기.
작가는 20여 년간 교단에서 학생들을 만나온 현직 교사다. 쉬는 시간마다 달려와 자신들의 일상과 사랑을 들려준 아이들의 목소리가 이 소설의 재료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이 소설의 십 대들은 어른이 상상한 십 대가 아니라 실제로 교실과 운동장과 도장에 있는 아이들처럼 말하고 망설이고 사랑한다. 욕이 습관인 아이의 거친 말 뒤에 있는 것을 알아봐 주는 일, 친구를 향한 마음과 친구의 연인을 향한 마음이 공존하는 자신을 견디는 일, “다 할 수 있다.”고 큰소리친 뒤 그게 안 된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일. 이 소설은 그 서툰 진심들을 어느 것 하나 함부로 심판하지 않는다.
장애를 가진 친구를, 아픈 자식을, 기다리게 한 연인을, 그리고 무엇보다 달라진 자기 자신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묻는 이들에게 이 소설을 권한다. 답은 소설 속 연우의 태도에 이미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서준이가 하나를 보여주면, 하나를 알아가는 것. 앞질러 묻지 않고, 못 본 척해야 할 것과 봐야 할 것을 구분하며, 상대가 자기 속도로 보여줄 때까지 옆에서 걷는 것. 『토요일 오후 두 시』는 그 기다림과 존중이 곧 사랑의 문법임을 보여주는, 오래 남을 성장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