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Y 교수의 캠퍼스(개정판)》 함계순 저자 후기

함계순 | 2026-08-28 | 조회 120

1. 《Y 교수의 캠퍼스(개정판)》를 출간한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워낙 방대한 내용과 서사, 역사와 진실, 시대 반영이 어우러진 작품이라 초판을 낼 때는 과연 이 작품이 제대로 책으로 완성될지 안될지 불안해 오직 책이 만들어지는가 그것만 생각하느라 다른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어요. 그렇지만 책의 내용이나 플롯트, 서사 등에는 내심 충실하고 모든 것이 알찬 걸 스스로 믿고 있어 독자들에게 귀한 선물이 될 거란 자부심을 가졌었지요.. 이 책은 누가 읽어도 엄청난 문학적 고찰과 지성을 겸비한 인물들의 호흡이 더없이 아름다운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실 제가 썼지만 다시 읽어도 너무 재미있고 아름답고 신실한 젊은 시절의 꿈과 낭만이 가득한 제 대학 시절이 생생하게 그려진 문학과 지성의 교과서라 하겠습니다.

2. 《Y 교수의 캠퍼스(개정판)》를 집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출간된《Y 교수의 캠퍼스》를 읽은 독자들로부터 이 굉장한 책을 어떻게 쓰셨느냐며 정말 대단하다는 인사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건 진실이라 당연히 인정받는다는 기분에 대단히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우려했던 일이 예상대로 드러나더군요. 본서 초판 제일 첫 부분에 실은 작가의 말 중에 6.25 전쟁 직후 1.4 후퇴 때 엄동설한 맹동에 중공의 한반도 침략으로 한국 피난민들이 끝없이 남쪽으로 쫓겨 내려가는 피난 과정을 나타내는 표현에서 넓고 큰 대로를 ‘신장로’ 로 표시했었는데 제가 굳이 ‘신장로’ 라고 고집했던 이유가 실은 ‘신작로’ 보다는 ‘신장로’ 로 표현하는 게 말소리의 울림이 피난대열의 정처없는 ‘흘러감’ 이라거나 ‘밀려감’ 같은 표현에는 더 어울릴 것 같은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제 어린 시절엔 신장로 라는 표현이 큰길을 표현하는 데 흔히 사용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따라서 큰길을 가리켜 ‘행길’ 이라거나 ‘신장로’ 라 하는 표현은 ‘신작로(新作路)’ 라는 표현보다 소리가 조금 더 옛스런 느낌이 드는 게 싫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처음부터 마주 대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므로 이게 맞춤법에 맞지 않지 않느냐는 얘기를 하니 독자들이 내게 맞춤법도 모르는 작가라는 낙인을 찍어대는 것 같아서 굳이 내 깊은 속을 알 길이 없는 독자들에게 구구한 설명을 널어 놓을 필요는 없겠다 싶었고 독자들은 작가의 깊은 심중 거기까지 생각하며 책을 읽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다음 인쇄 시엔 그 부분을 수정해야겠다고 생각했었어요. 헌데 차츰 책을 더 읽다보니 본의 아니게 초판 교정에서 찾아내지 못한 부분이 너무 여러 곳에서 발견되어 교정이 너무 미흡했던 걸 절실하게 느끼며 잘못된 것을 반드시 바로 잡아야 놓아야 겠다고 마음을 굳혔습니다.

사실 이 책은 내 문학의 모든 것이기에 이것을 바로 잡지 않고선 죽어도 제대로 눈을 감지 못할 것만 같았습니다. 독일 문호 괴테가 팔십에 걸작 ‘파우스트’를 써낸 것처럼 내 나이 팔십에 이 책을 쓰면서 온갖 열정과 충심을 다해 기도하며 엮었기에 조금이라도 잘못 표시되었거나 오류가 드러나면 생전에 반드시 바로 잡아 놓아야 독자는 물론 후일 나의 어린 손녀가 다 자라나서 할머니가 쓴 책을 읽더라도 부끄럽지 않은 책이어야 하겠기에 다시 개정판을 내기로 결심했습니다.

3. 책을 집필하면서 겪은 에피소드, 또는 즐거웠거나 어려웠던 점을 이야기해 주세요.

소설을 시작하려면 가장 먼저 주제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즉 무엇을 쓸 것인가? 그 근본적인 내용의 압축된 정의 그것을 테마 (Theme ) 라고 하겠는데 그것이 앞으로 지어질 마치 건물의 주춧돌처럼 작품의 베이스에 깔리는 겁니다. 그 작업이 선행되어야 소설의 시작이 이루어 집니다.

이후에 선택되는 각종 인물들과 서사들, 즉

삶의 진실, 사랑의 가치, 성격과 갈등 인생여정, 등 그 하나하나가 모두 정해진 그 주제에 따른 사유의 흐름에 섞여 함께 달려가게 되는 게 소설 쓰기라 생각합니다.

가끔 세간에서 들리는 어떤 말 끝에

‘ 에그으우.. 소설 쓰고 있네 ’

라거나 조금이라도 얘기가 길게 늘어지면

‘ 아이구, 너 소설 쓰니? ’

라며 쓸데없이 장황한 얘기를 하는 것을 소설에 빗대어 소설을 조롱하는 소릴 듣게 되는 때가 있지요? 솔직히 소설이 그렇게도 쉽고 하챦은 일인가를 생각하면 소설가들은 단 한 줄의 문장을 이끌어 내기 위해 밤을 새우기도 하고 몇날 며칠을 전전긍긍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렇게 소설을 도매값으로 후려치며 소설 쓰는 일을 쓸데없는 말장난 쯤으로 폄하하니 소설 쓰는 일에 자부심보다는 마치 못할 짓을 하다가 들통이 난 것처럼 부끄러워지기도 합니다. 참으로 서운하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물론 남이 뭐라 한다고 소설을 쓰느 일을 마다한다면 소설가가 아니겠지요.

적어도 소설을 쓰는 사람들은 소설을 쓰면서 험난한 언어적 고개를 넘을 때마다 느끼는 그 기쁨과 희열에 목숨을 걸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그들은 무엇보다도 더 아름답고 더 진실한 사랑을 꿈꾸며 한글자 한글자 피를 짜내는 심정으로 사랑을 그려내는 것입니다. 소설은 사랑의 이야기며 진실되고 아름답고 인간을 더 인간답게 이끌어 줍니다. 그게 소설이라 생각합니다.

 

 

전문은 https://blog.naver.com/barunbooks7/224393362258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출판상담문의

오전 9시 ~ 오후 6시
070-7857-9719

출판문의 및 원고접수
barunbooks21@naver.com

#채널 바른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