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속으로
그때 절 문 옆에는 포로로 잡혀 온 조선인 후예들과 유녀들이 하얗게 떼를 지어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나으리, 불쌍한 우리를 데리고 가주십시오.”
“우리를 이대로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그들은 자신들을 조선으로 데려가 달라고 손을 흔들고 발을 구르며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정사는 손을 내밀어 그들의 손을 잡았다.
설움에 북받친 그들은 정사의 손을 잡고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에 일행들도 모두 함께 울었다.
“내가 입은 이 공복(公服)이 이렇게 부끄러운 적은 없었소. 나도 차라리 여러분들과 함께 있으면 좋겠소. 그러나 지금 여러분들을 조선으로 데려가는 것은 나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내 가슴이 찢어집니다. 내가 돌아가면 여러분들의 소원을 주상전하께 꼭 아뢰겠소이다.”
- 본문 중에서
◆ 출판사 서평
제1권: 조선통신사의 실체 요약
1. 역적모의냐 정치적 음모냐?
1680년 3월, 영의정 허적의 천막사건으로 병권을 손에 쥔 김석주가 그해 4월, 영의정 허적의 서자 허견이 복창군 등과 역모를 꾸몄다 하여 국청을 열게 된다. 역적으로 몰린 남인들은 서인들의 정치적 음모라고 하지만 그들은 고문을 받아 죽고, 주인공 김지남을 복창군과 가깝다는 이유로 죽이려 하는데, 선배 역관 변승업의 도움으로 죽음을 면하게 된다.
2. 통신사의 일원이 되다
김지남은 일본에서 유황을 구입해 오라는 훈련대장의 밀명을 받고 1682년 통신사를 따라 일본으로 가게 된다. 그는 압물통사라는 직책을 맡아 통인, 사령 등 9명의 수하를 거느리는데, 이들과 ‘무극패’라는 조직을 만들어 통신사의 임무를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고락을 같이하게 된다.
3. 주흘산의 산적 떼
지남이 조령을 넘을 때 산적들이 나타나 임금의 예물을 탈취해 간다. 부사는 이제 자기들은 죽은 목숨이라며 지남을 죽이려 한다. 그러나 지남은 조령에는 산적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그 전날 임금 예단 보자기와 자기 옷 보자기를 바꿔놓아 예단을 보전하게 된다. 그 기지로 지남은 죽음을 모면하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정사는 지남을 은인으로 대한다.
4. 아! 동래성
동래부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 지남은 수하를 데리고 임란 때 군민 3,000여 명이 몰살을 당한 동래성을 꼼꼼히 살핀다. 동래성이 그렇게 무참하게 당한 것은 총 앞에 활이 힘을 쓰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라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좋은 무기를 가져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5. 동래의 최고 기생
정사는 지남이 생명의 은인이라며 동래의 최고 기생 영실을 엮어준다. 그녀는 부산에 머무는 3주 동안 지남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핀다. 조선관리들은 호피를 주고도 일본에서 유황 한 덩어리를 못 가져오는 바보라고 왜인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도 전해준다. 지남이 일본으로 떠나는 날 붉은 치마에 하얀 너울을 흔들 테니 자신인 줄 알라고 하면서 일본에서 돌아올 때쯤이면 자신은 이곳에 없을 것이라고 한다.
6. 대마도에서 있었던 일
6월 18일 지남은 부산항에서 파도와 사투를 벌이며 대마도에 도착한다. 그런데 선장이 배 밑에 인삼과 두 여인을 숨겨 와서 시모노세키 밀상들과 선상반란을 일으킨다. 놈들은 지남을 자루에 넣어 바다에 던져버리고 무극패 한 사람을 살해한다. 그러나 뒤늦게 달려온 무극패에게 지남은 구출이 되고 화가 난 정사는 다시 조선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자 대마도주가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7. 아기 천황의 불상
지남이 적간관에 도착하여 아미타사에 묵게 된다. 다음 날 아침 작은 석불상에 기도를 올리는 주지스님에게 그분이 누구냐고 묻는다. 주지는 7살 때 무신들에게 쫓겨 이 앞바다에서 어머니 품에 안겨 물에 빠져 죽은 안덕천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스님은 일본에도 고려말의 무신정권과 같은 반란이 있었다고 하며 일본의 무신 반란사를 상세하게 설명해 준다.
8. 별천지 오사카
적간관에서 겸예포 등을 거쳐 18일 만에 오사카에 도착하게 된다. 너무도 발전된 도시의 발전상을 보고 지남 일행은 깜짝 놀란다. 조카마치에서 남녀가 혼교하는 길거리 우키요에(浮世畵)는 더욱 충격이었다. 성리학에 갇혀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던 우리의 사회와는 전혀 다른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9. 국서빙례의식
정사 일행은 교토를 거쳐 에도에 도착한다. 에도성은 9개의 문이다. 제7문에서 하마하여 제8문에서 국서를 앞세우고 삼사신이 관백의 내청으로 들어가 관백을 기다린다.
관백이 일각오모(一角烏帽)의 검은색 어관을 쓰고 연노랑 저고리와 황금색 바지를 입고 큰 쌍칼을 차고 정당의 삼단층으로 된 마루 위에 책상도 없이 겹으로 된 방석 위에 앉는다. 그의 얼굴은 주렴과 비단으로 가려져 제대로 볼 수도 없고, 접근도 할 수 없었다. 삼사의 사배가 끝나자 관백이 근시를 시켜서 조선 임금이 보낸 국서를 낭독하게 한다. 낭독이 끝나자,
“수륙 먼 길을 오시느라 수고 많았소. 이렇게 많은 사신단이 와 주니 참으로 고맙소.”라고 간단히 인사말을 하자 윤 정사가 답한다.
“우리나라 임금님께서 전하의 습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라고 전해 국서전달 의례가 끝이 난다.
10. 조선천재와 일본신동의 시 대결
국서전달의례가 끝나자 일본 측의 요구로 조선의 천재 시인들과 일본의 신동 간에 천재성이 불꽃 튀는 창화(시 대결)를 갖는다.
11. 요시와라(吉原)
지남은 수하들과 함께 에도의 최대 유곽인 요시와라 구경에 나선다. 그곳에서 고려인삼을 파는 조선인 강병수를 만나게 된다. 그의 안내로 요시와라의 내부와 미녀와 문어 공연도 보게 된다. 강병수는 이곳에는 매독 등 성병이 유행하는데 치료를 못 해 조선인 3세 유녀들이 많이 죽어나간다고 했다. 지남은 이번 사행단 중에 의원(醫員)들이 와있다는 이야기를 하자 강병수는 그다음 날 조선 유녀 두 사람을 데리고 숙소로 찾아온다. 치료를 받은 조선 유녀들이 바로 효과를 보자 급기야는 에도막부의 집정들까지 찾아오게 된다. 그러나 유황이 없어 성병 치료를 못 한다고 하자 집정들은 성병 치료용 유황은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관백의 승낙을 받아낸다. 그 승낙으로 지남은 유황을 구입해 오라는 훈련대장의 밀명을 완수하게 된다.
12. 일본 관백의 친서
9월 11일 아침, 삼사는 에도막부 5대 관백의 친서를 받고 귀국길에 오른다.
13. 에도에 끌려온 조선의 후예들
삼사가 귀국길에 오르자 왜란 때 끌려온 조선인 후예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자신들을 조선으로 데려가 달라고 울며 애원한다. 그렇게 할 수 없는 정사는 가마에서 내려 그들의 손을 잡고 함께 운다. 한편 그들과 작별한 뒤 지남은 종사관의 승인을 받고 강병수와 일본인 겐조로부터 유황 2,000근을 구입하고 인삼으로 지불한다.
14. 해단식
에도를 떠나 귀국길에 오른 지남은 부산에 도착했지만 기다리던 영실은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해가 저물자 지남은 비통한 마음으로 발길을 돌린다. 그다음 날 부산항 저잣거리에 나가 무극패들과 해단식을 갖는다.
15. 누명을 벗다
임금께 귀국 복명하는 자리에서 훈련대장 신여철과 지평 김구가 지남이 구입했다고 하는 유황이 도착하지 않아 지남의 말을 믿을 수 없다고 한다. 지금쯤 당연히 도착했어야 할 유황이 도착하지 않았으니 지남도 할 말이 없었다. 지남은 누명을 벗기 위해 다시 부산으로 가게 된다. 부산에 왔지만 아무런 해결 방법이 없었다. 지남은 실의에 빠져 투신을 생각한다. 혹시 영실의 소식이나 들을까 해서 동래교방을 찾는다. 그때 행수기생이 자기들 집에 겐조라는 일본사람이 유황을 팔려고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그 순간 겐조가 그놈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추적한 결과 놈이 일본의 밀상들과 결탁하여 대마도 인근 해역에서 강병수를 물에 빠뜨려 죽이고 그 유황을 부산에서 다시 팔려고 하는 중이었다. 지남은 동래부사와 부산진 첨사의 도움을 받아 놈들을 모두 체포하고 유황을 다시 찾아 서울로 와서 누명을 벗게 된다.
그것으로 지남의 임술사행의 모든 일정은 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