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밥통 일기》 공노비 저자 후기
공노비 | 2026-03-19 | 조회 186
1. 《철밥통 일기》를 출간한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저에게 30여 년 공직 생활은 거대한 서류의 산을 쌓는 시간이었습니다. 늘 목적이 분명하고 근거가 탄탄한 문서들만 써오다가, 정작 그 어디에도 적히지 않았던 감정들을 모아 책으로 내놓으니 잊혀가는 기억들에 대한 마지막 보고서를 완수한 기분입니다. 공무원이라는 이름 아래 숨겨진 다채로운 고뇌를 세상에 내보이게 되어 시원섭섭하면서도 묘한 해방감을 느낍니다.
2. 《철밥통 일기》를 집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미화된 행정의 껍데기를 벗겨내고, 그 안에 치열하게 살아 숨 쉬는 '사람'이 있었음을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공직은 흔히 공정과 헌신이라는 숭고한 언어로 설명되지만, 그 이면에는 웃음과 당황, 분노와 후회가 뒤섞인 불완전한 사람들의 집합체이기 때문입니다. 공문서의 정제된 언어로는 남지 못한 '행정의 여백'을 솔직하게 꺼내놓고 싶었습니다.
3. 책을 집필하면서 겪은 에피소드, 또는 즐거웠거나 어려웠던 점을 이야기해 주세요.
지난 시간을 복기하며 지금 다시 돌아봐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부끄러운 장면들을 마주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시장 수행비서 시절 차 안에서 겪은 생리적 한계의 소동이나, '요지'를 가져오라는 말에 이쑤시개를 챙겨온 신입 직원의 이야기 등은 쓰면서도 절로 실소가 터져 즐겁기도 했습니다. 조직을 위해 침묵해야 했던 순간들을 하나씩 글로 풀어내는 과정은 스스로를 치유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4. 책 내용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애착이 가는 구절이 있나요?
"공직은 제도로 남지만, 기억은 사람으로 남는다"라는 구절에 가장 큰 애착이 갑니다. 또한, 30여 년 전 출산한 아내를 뒤로하고 사무실로 뛰어가야 했던 선택을 후회하며, 교복 입은 딸 앞에서 눈물 흘렸던 장면이 가슴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일과 가정 사이에서 서툴렀던 한 청년 공무원의 성장이 담긴 부분이라 더욱 마음이 쓰입니다.
5.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셨나요?
홀로 책상 앞에 앉아 끙끙대기보다, 선배 공직자들이나 마음 맞는 동료들과의 술자리를 찾았습니다. 소주잔을 기울이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각자가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소회나 잊지 못할 추억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곤 했습니다. 동료들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에서 제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행정의 다른 면을 발견하기도 하고, 가물가물했던 저의 기억 조각들도 선명하게 복기되었습니다. 그 뜨거웠던 대화들이 글의 풍성한 소재가 되었고, 덕분에 행정의 언어가 아닌 가장 솔직한 ‘사람의 언어’를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6. 이 책을 접할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주세요.
공무원이라는 무채색의 이름 뒤에, 얼마나 다채로운 욕망과 고뇌를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늘 정해진 규정대로만 살 것 같은 공무원들도 때로는 흔들리고 무너지면서, 술잔을 사이에 두고 나누는 동료의 투박한 진심에 기대어 간신히 하루를 버텨내는 사람들입니다. 이 기록이 이제 막 공직에 들어선 후배들에게는 미리 겪어보는 작은 예고편이 되고,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는 동료들에게는 “나만 힘든 게 아니었구나”라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담백한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