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진 사다리: 각자도생하는 평생·직업교육·훈련》 김환식 저자 후기

김환식 | 2025-08-20 | 조회 558

1. 《끊어진 사다리: 각자도생하는 평생·직업교육·훈련》을 출간한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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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어진 사다리: 각자도생하는 평생·직업교육·훈련』은 오랫동안 현장에서 보고, 정책 속에서 고민하고, 연구와 행정의 언어로 풀어내려 애써왔던 문제의식을 비로소 독자들과 나누게 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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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단순히 제도 설명이나 정책 비평을 넘어서, “왜 우리는 교육을 받아도 진로가 연결되지 않는가?”, “왜 배워도 경력이 되지 않는가?”, “왜 배움의 기회는 개인의 몫이 되어버렸는가?”라는 질문들에 대한 집요한 추적이자 구조적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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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정부 부처가, 공공기관이 제 역할을 하지 않을 때 그 공백은 오롯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불안과 단절로 전가됩니다. 그 실상을 드러내고, 그 대안을 함께 상상하는 일이 더는 미룰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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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을 마친 지금, 이 책이 단지 비판을 위한 책이 아니라 직업교육과 평생학습의 공공성을 회복하고, ‘학습복지사회’라는 미래를 함께 설계하기 위한 공론장의 작은 출발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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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책의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는 후속 권, 『직업교육, 다시 묻고 새로 쓰다』에서는 직업교육에 대한 새로운 철학과 구조적 관점을 좀 더 깊이 있게 정리해 두었습니다. 직업교육이란 무엇이며, 왜 다시 써야 하는가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담은 일종의 직업교육원론서입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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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끊어진 사다리: 각자도생하는 평생·직업교육·훈련》을 집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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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개인적 안타까움과 공적 경험이 맞닿은 자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정부에서 세 차례에 걸쳐 국가 차원의 5개년 기본계획을 수립한 바 있습니다. 직업교육훈련기본계획과 국가인적자원개발기본계획 2차례. 이처럼 여러 차례 중장기 계획을 총괄해 본 공무원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고졸취업 관련 업무를 맡으며 수많은 정부 부처와 협업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각 부처의 정책 구조와 작동 원리를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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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도, 경력도, 관심도 모두 직업교육과 평생교육에 있었습니다. 직업교육기관인 전문대학에서 교수로,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직업능력연구원에서는 연구자로 일했고,

외국 정부로 파견갔을 때에도 그 나라의 직업교육 정책을 분석하고, 국제기구에서는 직업교육 ODA를 담당했습니다. 행정직으로는 사무관, 과장, 국장까지 줄곧 직업교육과 평생교육 담당 부서에서 근무했습니다. 덕분에 교육, 노동, 산업, 과학기술 등 다양한 정책영역이 현장에서 어떻게 연결—or 단절—되는지를 입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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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제 눈에 비친 한국의 직업교육, 직업훈련, 평생학습은 너무도 분절되고 흩어져 있었습니다. 정책은 많지만 제도는 이어지지 않고, 학습은 쌓이지만 경력은 축적되지 않으며, 국가는 존재하지만 책임은 사라져 있었습니다. 저는 이 현실을 국민들이 더는 ‘모른 채’ 지나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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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사다리’는 지금 끊어져 있고, 정부부처와 산하기관은 공공성보다는 각자의 이익과 생존 논리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분명히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 책은 현장에서 일해온 한 정책가의 기록이자, 학습이 권리가 되는 사회를 꿈꾸는 한 시민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 끊어진 사다리를 다시 잇기 위한 사회적 상상과 설계의 시작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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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책 내용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애착이 가는 구절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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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정할 때 제일 힘들었습니다. 희망사다리라는 용어가 있었습니다. 제가 고졸취업 업무를 담당할 때 특성화고 학생들에게 전액 장학금을 주기 시작했고, 그때 사용했던 용어가 희망사다리입니다.

그런데 그 희망사다리가 끊어지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끊어진 사다리’라고 한 것입니다.

동시에 끊어진 사다리의 이면에는 정부의 각자도생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공익과 공공성이 아니라 관료적 이익과 기관의 존립과 성장이 더 중요한 가치로 자리잡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부와 산하기관이 본질적인 협력을 하지 않는다면, 즉 각자도생을 선택한다면, 결국 국민들도 각자도생할 수 뿐이 없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이 ‘각자도생’이라는 용어도 잘 선택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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