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베껴 쓰다 보니 시가 되었어》 박서현 저자 후기

박서현 | 2024-02-23 | 조회 782

1. 《너를 베껴 쓰다 보니 시가 되었어》를 출간한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작년 목표 중 가장 만족스럽게 달성한 것을 꼽자면 운전을 포기하지 않은 일입니다. 장롱면허인 제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덜컥 중고차를 구입하고 운전 연수를 받았었습니다. 중고차 가격에 버금가는 연수비와 연수시간 그리고 접촉사고… 겁이 많은 저에게 수많은 ‘운전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떠올랐지만 결국 ‘부산’에서 운전을 하고 다닙니다. (웃음) 올해 신년 계획을 세울 때 가장 중요한 목표는 제 이름이 박힌 시집을 내는 것이었습니다. 올해 9월 10일이면 등단한 지 3년이 되는 해. 그 안에 시집을 내자고 나와의 약속을 했었는데, 커서증후군과 깊은 우울증으로 한 줄의 글을 쓸 엄두가 나지 않았었습니다. ‘시집을 내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무수하게 떠올랐지만 결국 책은 나왔습니다. 그것도 예상했던 시일보다 훨씬 빠르게! 아마 올해 가장 만족스럽게 달성한 목표를 꼽자면 책을 출간한 일이 되겠죠. 너무 감개무량하고 나 스스로에게 뿌듯함을 느낍니다.

2. 《너를 베껴 쓰다 보니 시가 되었어》를 집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사람들은 알 것 같은 느낌, 읽는 행위에서 그치지 않고 나 또한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 저는 20년 가까이 신춘문예 시기에 맞춰 단편소설을 썼었는데 어쩌다 보니 <단테에게>라는 시로 등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소설과 시는 작법 자체가 정반대인 장르입니다. 처음에 시는 소설보다 쉬울 줄 알고 시집을 먼저 내겠다고 목표를 세웠습니다. 시집 다음엔 수필집, 수필집 다음엔 단편 소설집 이런 식으로 말이죠. 지금 생각하면 정말 무지에서 오는 용감함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시의 세계는 점점 더 나에게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3. 책을 집필하면서 겪은 에피소드, 또는 즐거웠거나 어려웠던 점을 이야기해 주세요.

등단 이후 2년 가까이 커서증후군과 우울증이 겹쳐서 나타났습니다. 시집의 30%를 이 어두운 구간에서 탈고의 탈고를 거치면서 썼다면, 아이러니하게도 나머지 부분은 새해가 되자 불현듯 떠오르는 시상들에 써 내려갔고 그 기간이 3주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마치 전원 off 스위치가 on 되는 느낌이랄까? 그동안 쓰고 싶어도 떠오르지 않던 시상이 한꺼번에 쏟아져서 잠을 잘 수가 없을 정도였죠. 어느 것이 30%의 부분이고 어느 것이 나머지 부분일까요? (웃음)

4. 책 내용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애착이 가는 구절이 있나요?

<가을걷이>는 이 시집의 거의 끝 무렵에 쓴 시인데 고해성사하는 기분으로 쓴 것 같습니다. "아무리 길어도 겨울은 가기 마련 / 겨울 지나고 봄 여름 / 다시 고추 널어 말리는 / 가을이 오기까지 / 사계절의 꽃들로 빈 잔 겨우 채우고 / 계절들아 고맙다, / 너를 베껴 쓰다 보니 시가 되었어"라는 구절에 이 시집의 모든 것이 함축된 듯합니다.

5.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셨나요?

정신과 상담을 받았을 때, 너무 완벽하게 좋은 글을 쓰겠다는 압박감이 커서증후군과 우울증의 원인이란 진단을 받았었습니다. 그래서 나에겐 시 한 구절 한 구절이 중요하지만 읽는 독자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계속 상기시켰습니다. 나는 윤동주가 아니라고 말입니다^^. 마음에 와닿는 한 문장, 그거면 욕심내지 않아도 되겠다, 그런 마음. 그리고 ‘잘 써지지 않을 때 써봐야 좋은 글이 나올 리 없다’라고 합리화하며 그냥 쓰지 않았습니다.

6. 이 책을 접할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주세요.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자기 앞의 생에 한 번쯤은 겨울을 맞이하게 될 순간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겨울이 지나야 봄 여름 가을이 있습니다. 겨울이 혹독할수록 봄에 피는 매화는 그 향기가 더 짙은 법. 그래서 인생이란 계절의 시작은 겨울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겨울이 너무 차갑고 시릴 때 이 시집과 함께 계절을 나길 바랍니다.

7. 바른북스와 함께하면서 인상 깊었던 점 혹은 만족한 부분을 적어주세요.

부산에 살고 있어서 계약부터 출판 진행의 모든 과정을 메일로 주고받았습니다. 대면 상담이 익숙한 나이(?)인 저에겐 또 다른 도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디테일한 부분까지 세심하게 배려한 편집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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