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은 마을을 어떻게 바꿨나》 신하림 저자 후기
신하림 | 2024-05-21 | 조회 507
1. 《산불은 마을을 어떻게 바꿨나》를 출간한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숙제를 마친 기분입니다. 강원도는 대형 산불(피해 면적 100㏊ 이상 혹은 24시간 이상 지속된 산불)이 최근 30여 년간 33건 발생했을 정도로 재난이 반복되고 있어요. 산림 과학적 측면에서 산불 예방책이나 복구책에 관한 책은 나왔지만 ‘산불 이후의 이재민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는 다뤄진 적이 없었거든요. 진짜 재난은 산불이 꺼진 이후 발생하는데 이런 현실을 누군가는 알려야 한다고 늘 생각했습니다. 지역신문 기자로서 해야 할 일이었죠.
2. 《산불은 마을을 어떻게 바꿨나》를 집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강원일보》 기자로 2006년에 입사해 2019년 경제부에서 근무할 때 고성 산불을 취재했고, 2021년부터 사회부에서 근무하면서 2022년 동해안 산불, 2023년 강릉 경포 산불을 취재했어요. 경포 산불이 발생했던 2023년 4월 11일은 우울하고 슬픈 날이었어요. 저는 강릉에서 태어나고 자라 ‘경포’와 관련된 추억이 참 많거든요. 벚꽃 피는 봄, 해수욕장 가는 여름, 가을과 겨울까지 사계절의 추억이 있어요. 그 공간이 잿더미가 됐다는 것은 충격이자 아픔이었습니다. 이재민들의 이야기가 흩날리는 게 싫었고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마침 공고가 났던 방일영 문화 재단의 저술·출판 지원 사업에 선정되면서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재단에 감사드립니다.
3. 책을 집필하면서 겪은 에피소드, 또는 즐거웠거나 어려웠던 점을 이야기해 주세요.
누군가의 아픔을 갖고 글을 쓴다는 것이 어려웠어요. 아무도 예상하지도 못했고, 누구도 100% 보상받을 길도 없는 이야기잖아요. 저는 글을 쓰며 ‘우리나라 사회 재난(산불) 복구 체계의 문제점을 짚어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지만 그러려면 누군가의 아픈 기억을 끌어내야 했어요. 기록의 신뢰성을 위해서는 가명보다는 실명으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한데 서로 더 많은 신뢰가 필요했습니다. 정기적으로 찾아뵙거나 전화 드리며 상황을 여쭤봤어요. 앞으로도 이어질 일상일 거 같습니다.
4. 책 내용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애착이 가는 구절이 있나요?
강릉 최남단에 있으면서 동해시와 인접한 ‘옥계면’이란 마을이 있어요. 대형 산불이 2004년, 2017년, 2019년, 2022년 발생했는데 나무 없는 산이 얼마나 참혹한지 옥계면을 가면 알 수 있어요. 남양 2리는 산불이 시작된 마을인데 이장님께서 처음에는 별말씀 없으시다가 몇 차례 찾아뵈니 “보여줄 게 있다"라며 뒷산으로 데려가셨어요. 밤나무, 엄나무, 소나무, 감나무가 다 타버린 산이었습니다. 고령 주민들에게는 중요한 소득원이 사라진 거죠. 남양 2리는 산불이 날 때마다 고위직들이 다녀갔어요. 하지만 뒷산까지는 보지 않았습니다. 이장님의 “이런 아픔을 누가 알아주겠느냐?"라는 통한의 한마디가 잊히지 않네요.
5.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셨나요?
단행본 책을 쓴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요. ‘산불 이후 남겨진 이재민들의 이야기’여서 이야기 흐름을 갖춰야 했는데 이 과정이 낯설고 어려웠습니다. 논픽션 작가들이 쓴 스토리 텔링에 대한 책들도 틈틈이 찾아봤어요. 이야기도 구조가 있다는 걸 새삼 알게 됐는데 작가분들이 존경스러웠습니다. 저는 여전히 부족하지만 일단 책으로 냈네요. 첫 문장 쓸 때 느끼는 압박감은 여느 글쓰기에서나 마찬가지일 거 같은데 작년 늦여름에 강릉 정동진에 숙소를 잡고 시작했어요. 그날 밤에 바다 위에 뜬 ‘고기잡이배’를 봤는데 큰 힘이 됐어요. 누군가는 이런 밤에, 저 깊은 바다 위에서 저런 수고를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에필로그에 쓰기는 했는데 이 책도 누군가에게 ‘고기잡이배’와 같은 책이 됐으면 좋겠어요.
6. 이 책을 접할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주세요.
다들 바쁘고, 관심거리도 많은 세상이잖아요. 이재민들의 이야기도 언젠가는 잊힐 수밖에 없죠. 하지만 ‘진짜 재난’은 재난이 이후에 시작된다는 것만큼은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경제적 고통, 사회적 갈등, 심리적 어려움 등은 재난 이후에도 일평생 남거든요. 남의 아픔에 대해 말 한마디라도 함부로 하지 않는 그런 배려가 필요할 거 같습니다. 사회 곳곳에 워낙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 시대라서 이재민에 대한 예산 지원을 늘리는 것도 많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데요. 하지만 ‘배려’만큼은 예산이 들지 않는 거니까 빠르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